중세사인물

나익희

khf666666 2026. 2. 24. 2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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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익희(羅益禧, 1271~1344)

고려 후기의 무신.

본관 : 금성(錦城 : 시조 나총례의 11대손)

자 : 자승(子昇)
호 : 경재(敬齋), 퇴우재(退憂齋)

시호 : 양절(良節)

[가족사항]

고조부 : 검교대호군(檢校大護軍) 나인겸(羅仁謙)
증조부 : 증(贈) 태중대부(太中大夫) 예부상서(禮部尙書) 지도성사(知都省事) 나효전(羅孝全)
조부 : 금자광록대부(金紫光祿大夫) 수사공(守司空) 상서좌복야(尙書左僕射) 판호부사(判戶部事) 나득황(羅得璜)
부 : 회원대장군(懷遠大將軍) 관군상만호(管軍上萬戶) 봉익대부(奉翊大夫) 지밀직사사(知密直司事) 군부판서(軍簿判書) 상장군(上將軍) 세자원빈(世子元賓) 나유(羅裕)
숙부 : 첨의정승(僉議政丞) 나윤(羅允) [충렬공 김방경의 손녀사위], 첨지중찬(僉知中贊) 나종수(羅宗綏) 
외조부 : 위사보좌공신(衛社輔佐功臣) 은청광록대부(銀靑光祿大夫) 동지추밀원사(同知樞密院事) 병부상서(兵部尙書) 상장군(上將軍) 조문주(趙文柱)
매부 : 판삼사사(判三司事) 홍융(洪戎) [고려 명덕태후의 오빠이자 홍언박의 부친], 이방보(李方甫), 조위(趙瑋)
장인 : 추성수정보리공신(推誠守正保理功臣) 삼중대광(三重大匡) 판첨의부사(判僉議府事) 우문관대제학(右文館大提學) 감춘추관사(監春秋館事) 상호군 여흥부원군(驪興府院君) 문인공(文仁公) 민지(閔漬)
사위 : 최문도  
아들 : 봉익대부 밀직부사(密直副使) 상호군 금성군(錦城君) 나영걸(羅英傑) [고려 명덕태후의 부친인 홍규의 외손녀사위], 나성군(羅城君) 나준걸(羅俊傑), 봉익대부 나열걸(羅烈傑)

[설명]

1271년(원종 12) 무인 가문에서 태어나 어려서부터 무예를 익혔으며, 17세에 원나라로 부터 작위와 벼슬을 받아 금부(金符)를 차고 상천호(上千戶)가 된 뒤 부친 나유가 사망 후 그 작위를 이어 관군상만호(管軍上萬戶)에 임명되었으며 관계(官階)는 호덕장군(虎德將軍)으로 삼주호부(三珠虎符)를 찼다.
충렬왕 말기에 신호위 호군(神虎衛護軍)에 임명되어 금자(金紫)를 하사받고 첨의중사(僉議中事)를 겸하였다.
충선왕이 개혁정치를 펴면서 많은 반원파 인사들을 파직시켰음에도 낭관의 지위에 있던 그만은 머물러 있도록 했는데 왕이 명을 내리면 관리들이 무조건 적으로 받들었으나 그는 법을 지키고 옮고 그름을 따져 바로잡으려는 일들을 자주 하여 눈 밖에나 벼슬에서 밀려났다가 10년이 지나 검교상호군(檢校上護軍)에 제수되고, 다시 7년 뒤에 감문위 상호군(監門衛上護軍), 다시 천우위 겸 중문사(千牛衛兼中門使), 또 좌상시(左常侍)로 옮겼다. 세 번 관직을 옮겨 광정대부(匡靖大夫) 상의평리(商議評理)에 올라 금성군(錦城君)에 봉해졌다.

일찍이 계림부윤(雞林府尹)을 한 번 지내고 합포진장(合浦鎭將 : 합포는 지금의 마산을 말함)을 세 번이나 하였는데 청렴하고 부지런하여 칭송이 자자하였다고 한다.

57세에 작위를 아들에게 세습하고 17년간 물러나 한가롭게 지냈으나 늘 정사와 백성의 고통에 대해서 근심하였다고 한다. 그러던 중 1344년(충목왕 즉위년) 충목왕이 즉위하자 다시 기용되어 첨의참리(僉議參理)가 되었으나 그해 8월 사망하여 양절의 시호가 내려졌다.

[성품]

천성이 곧고 절의를 사모하여 남들과 다투는 일을 부끄럽게 여겼다. 어머니가 가산을 나누면서 별도로 노비 40명을 공에게 주었다. 공이 사양하면서 말하기를 “외아들로서 다섯 딸 가운데 있으면서 어찌 차마 구차스럽게 많이 얻어 자식 많이 두신 부모님의 어지심에 누를 끼칠 수 있겠습니까?” 하였다. 어머니가 옳게 여겨 허락하였다..... (중략) 얼굴이 매우 수척하고 귀가 다소 어두웠으나 일에 임하면 강개하여 조금도 게을리 하지 않았다. 하루는 판삼사사(判三司事) 이제현(李齊賢)에게 말하기를 “우리 임금이 어려서 정사를 재상에게 맡겼는데, 자격없고 지위에 맞지 않는 자들이 지난날 잘못을 경계하지 못하니, 나는 책임을 지고 물러나서 함께 여러 사람들의 손가락질을 받는 바가 되지 않으려고 하는데, 공은 어떻게 할 것인가?”라고 하였다. 이제현은 말하기를 “저는 전에 두세 가지 계책으로 권력을 잡은 자들을 깨우치려 했으나 실행이 되지 못해 늘 용기 있게 물러나지 못한 것을 부끄럽게 생각했습니다. 감히 공의 말씀에 따르지 않겠습니까” 하였다. 10여 일 후 공이 병으로 물러나겠다고 한다는 말을 듣고, 혼자서 이전의 계획을 수행하려고 하는구나 하고 생각했다. (그러나 끝내 일어나지 못할줄 알았겠는가)

-『고려사』권제17「나익희열전」및『고려사절요』권25 나익희 졸기 중 -

 

[참고자료]

『고려사(高麗史)』
『고려사절요(高麗史節要)』
『익재난고(益齋亂藁』
『금성나씨대동보(錦城羅氏大同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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