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진경(胡晉卿, 1107∼1160)
고려 중기의 문신.
본관 : 토산(兎山)
[가족사항]
조부 : 검교신호위상장군(檢校神虎衛上將軍) 행 중랑장(行中郞將) 호종적(胡從迪)
부 : 시군기소감(試軍器少監) 지다방사(知茶房事) 호인영(胡仁穎)
외조부 : 검교신호위대장군(檢校神虎衛大將軍) 행 산원(行散員) 김선영(金善英)
장인 : 합문지후(閤門祗候) 황보 정(皇甫靖)
사위 : 호부시랑(戶部侍郞) 유광수(柳光壽), 위위주부동정(衛尉注簿同正) 정공습(鄭公襲)
아들 : 호신수(胡愼修), 호신사(胡愼思)
※ 슬하에 3남 3녀가 있고 상기 내용 외 누락된 아들, 딸은 호진경 사망 당시 어려서 묘지명에도 적지 않았다.
[설명]
1107년(예종 2) 검교신호위상장군 행 중랑장을 지낸 호종적의 1남 7녀 중 외아들로 태어났다.
1118년 어려서부터 총명하여 12세때 유학을 배우기 시작하였다.
1122년 16세에 남성시(南省試)에 급제하였다.
1128년 4월, 22세의 나이로 춘관시(春官試 : 예부시)에 급제하였다.
1132년(인종 10) 정주방어판관 겸 권농사(定州防禦判官兼勸農使)에 임명되었는데 재직 3년 동안 청렴하고 부지런하게 공무에 힘썼으며, 또한 백성을 잘 보살펴 향리들과 백성들로부터 존경을 받았다. 이에 포상되어 1145년(인종 23) 비로소 중앙관료가 되었다. 내관으로 서너번의 관직을 거쳐 시합문지후(試閤門祗候)에 이르렀다.
1160년(의종 14) 6월 23일, 질병을 얻어 54세의 나이로 사망하였다.
[성품]
천성이 화목하고 즐겁고 온순하고 공손하며, 삼가며 신중하여 오만한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그가 사망한 날 친구들이 소식을 듣고 슬퍼하지 않는 이가 없었다.
君天性和樂溫恭謹愼不形於慠慢身死之日親舊聞之無不悲哀
[참고자료]
『호진경묘지명(胡晋卿墓誌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