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세사인물

신소봉

khf666666 2025. 8. 7. 22:53
반응형
SMALL

신소봉(申小鳳, ?~1367?)

고려 후기의 환관·공신.

시호 : 충희(忠禧)

[설명]

1341년(충혜왕 복위 2) 충숙왕의 아들이자 충혜왕의 동생인 강릉대군(江陵大君 : 훗날의 공민왕)이 원나라에 입조하여 숙위할 때 따라가 11년간 강릉대군을 호종하였다.
1352년(공민왕 원년) 공민왕 즉위 후 원에서 왕을 수종(隨從)한 공으로 대호군(大護軍)에 임명되고 1등상공신(一等上功臣)에 책봉되어 토지와 노비를 하사받았다.
1354년 친어군 상호군(親禦軍上護軍)으로 승진한 뒤 영원부원군(寧原府院君)에 봉해졌다.
1361년 홍건적(紅巾賊)의 침입으로 개경(開京)이 함락되고 공민왕은 안동까지 피난을 갔는 때, 이 때 호종한 공로로 1363년 1등공신에 서훈되었다.
1365년 공민왕의 정비 노국대장공주(魯國大長公主)가 사망하자 3년 동안 정릉(正陵)을 지킨 공로로 1367년 밀직사 상의회의도감사(密直使商議會議都監事)의 벼슬이 더해지고 충근절의익위공신(忠勤節義翊衛功臣, 『고려사절요』에서는 충성절의익위공신(忠誠節義翊衛功臣)이라 적고 있어 차이가 있다)의 호를 하사받았다. 공민왕은 백관에게 명하여 영빈관(迎賓館)에서 그를 영접하도록 했는데 이 날 송악산(松嶽山)에서 산사태가 나자 당시의 여론은 “조종(祖宗)의 법에 환관은 참관(叅官 : 중앙 고위 관직)이 될 수 없다고 하였다. 지금 옛 법을 훼손하고 그를 조정에 두었으니, 나라의 진산(鎭山)이 무너진 것은 반드시 이것 때문에 일어난 것일 것이다.”라고 하였다고 한다. 한편, 공민왕이 신소봉으로 하여금 노국대장공주의 묘인 정릉을 수직하게 한 것이 수릉관(守陵官)의 시초이며 이로 인해 풍속이 되어 없어지지 않은 것이라고 한다.
1367년(공민왕 16) 도첨의평리 상의 회의도감사(都僉議評理商議會議都監事)에 제수되었다가 사망하였는데 관에서 장례비용을 대었으며 특별히 충희라는 시호가 내려졌다. 

 

[참고자료]

『고려사(高麗史)』
『고려사절요(高麗史節要)』
『성호사설(星湖僿說)』

반응형
LIST

'중세사인물' 카테고리의 다른 글

박인계  (1) 2025.08.19
백돈명  (3) 2025.08.13
윤군정  (4) 2025.08.01
장녕공주  (9) 2025.07.23
현지묘  (0) 2025.07.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