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약온(金若溫, 1059∼1140)
고려 중기의 대문벌 귀족·문신.
본관 : 광산(光山)
초명 : 김의문(金義文)
자 : 유승(柔勝)
시호 : 사정(思靖)
[가족사항]
고조부 : 삼중대광(三重大匡) 상서좌복야(尙書左僕射) 김준(金峻)
증조부 : 상서좌복야 한림학사(翰林學士) 평장사 문정공(文貞公) 김책(金策)
조부 : 수사도(守司徒) 문하시랑평장사(門下侍郞平章事) 김정준(金廷俊) [이자겸의 외조부]
부 : 수태보(守太保) 문하시중(門下侍中) 감수국사(監修國史) 문안공(文安公) 김양감(金良鑑)
고모 : 통의국대부인(通義國大夫人) 김씨 [이자겸의 모친]
고모부 : 호부낭중(戶部郎中) 경원백(慶源伯) 경덕공(景德公) 이호(李顥) [이자연의 6남이자 이자겸의 부친 / 고려 순종의 장인]
모 : 증 서해군대부인(西海郡大夫人) 해주최씨(海州崔氏)
외조부 : 상서우복야(尙書右僕射) 중추원사(中樞院使) 최연하(崔延嘏)
형 : 위위소경(衞尉少卿) 김의영(金義英) [이자연의 장남인 이정(李頲)의 사위]
동생 : 특진(特進) 금자광록대부(金紫光祿大夫) 검교태자대사(檢校太子大師) 호부상서(戶部尙書) 겸(兼) 삼사사(三司使) 충정공(忠貞公) 김의원(金義元) [이자연의 손자인 이자인(李資仁)의 사위]
장인 : 대중태부(大中太夫) 수태부(守太傅) 겸(兼) 문하시중 상주국 정헌공(貞憲公) 이정(李頲) [이자연의 장남 / 고려 선종의 장인]
아들 : 증 호부상서(戶部尙書) 김선(金璇) [고려 인종의 장인]
딸 : 광양군대부인(光陽郡大夫人) 김씨
사위 : 증 은청광록대부(銀靑光祿大夫) 수사공(守司空) 중서시랑평장사(中書侍郞平章事) 판상서형부사(判尙書刑部事) 주국(柱國) 문강공(文康公) 윤언이(尹彦頤) [윤관의 아들]
손자 : 우부승선(右副承宣) 김이영(金貽永) [정중부의 아들인 정균의 장인]
손녀 : 김씨(합문지후(閤門祗候) 김지우(金之祐)의 부인), 선평왕후(宣平王后) [고려 인종의 제2왕후]
[설명]
1059년(문종 13) 태어났다.
과거에 급제한 뒤 상의봉어(尙衣奉御)를 거쳐 광주통판(廣州通判)이 되었다가 개경으로 돌아와 중서사인(中書舍人)이 되었고, 이어 합문사(閤門使)가 되었다.
1113년(예종 8) 12월, 지상서도성사(知尙書都省事)에 제수되었다.
1116년 4월, 지서경유수사(知西京留守事)로서 서경에 행차한 예종의 어가를 호종하였다.
1117년 6월, 호부상서에 제수되었다.
1122년 지추밀원사(知樞密院事) 겸 태자빈객(太子賓客)에 제수되었다가 인종이 즉위한 뒤 참지정사(叅知政事)에 제수되었다.
1123년 12월, 중서시랑 평장사(中書侍郞平章事)에 제수되었다.
1124년(인종 2) 4월, 지공거(知貢擧)가 되어 동지공거 병부시랑(兵部侍郞) 김부식과 함께 과거를 실시하여 고효충 등 37명을 급제시켰다.
7월, 권신 이자겸이 양절익명공신(亮節翼命功臣)에 책록되고 중서령(中書令) 겸 영문하상서도성사(領門下尙書都省事)에 임명되어 판이부사(判吏部事)와 판병부사(判兵部事), 서경유수사(西京留守事)를 겸하였으며, 식읍 8천 호와 식실봉 2천호를 하사받는 등 여러 아들들의 관직까지도 승급되어 그의 일문이 권력을 장악하게 되자 박승중이 이자겸의 생일을 인수절(仁壽節)이라 부르자 건의하였다. 이에 김부식이 "생일을 절(節)이라고 부르는 것은 옛날부터 없었다. 당 나라 현종조에 황제 생일을 처음으로 천추절(千秋節)이라 불렀으나, 신하로서 절이라 칭했다는 말은 듣지 못하였다." 라고 하자 이에 동의하고 김부식과 같이 반대하였다.
12월, 검교사도(檢校司徒) 수사공(守司空) 상주국(上柱國)이 더해지고 문하시랑 평장사(門下侍郞平章事)에 제수되었다.
1139년(인종 17) 11월, 수태부(守太傅) 추충수정정안사공신(推忠守正安社功臣) 문하시중(門下侍中) 판호·예부사(判戶禮部事)에 제수되고, 곧 벼슬에서 물러났다.
1140년(인종 18) 2월, 사망하였다. (82세)
[성품]
성품이 공손하고 검소하며 청렴하고 조용하여 일찍이 부귀하였으나 남에게 교만하지 않았다. 이자겸이 국구로 나라를 맡아 다스리자 이익을 좋아하는 자들이 다투어 이자겸에게 아부하였다. 김약온이 이자겸과 당형제(堂兄弟)가 되었지만 서로 친하게 지내지 않으니 세상에서는 그가 바른 길을 지킨다고 여겼다.
性恭儉廉靜, 未嘗以富貴驕人. 李資謙以國舅當國, 士之喜利者爭附之. 若溫與資謙, 爲堂兄弟而不相比, 世多其守正.
-『고려사』97권 열전 권제10 김약온전 中 -
성품이 공손하고 검소하며 청렴하고 정직하였고, 학문에 힘썼다. 중앙과 지방 관직을 역임하였는데, 이르는 곳마다 사람들이 편하게 여겼다. 이자겸이 정권을 잡자 이익을 좋아하는 자들이 다투어 아부하였지만, 약온은 자겸과 4촌 형제였는데도 서로 친하게 지내지 않았다, 지위가 비록 영화롭고 현달하였으나 부귀로 남에게 교만을 부리지 않았다.
性恭儉廉正, 力學. 歷仕中外, 所至人便之. 李資謙秉權, 喜利者爭附, 若溫與資謙爲堂兄弟, 而不相比. 位雖華顯, 未嘗以富貴驕人.
-『고려사절요』권10 김약온의 졸기 中 -
[참고자료]
『고려사(高麗史)』
『고려사절요(高麗史節要)』
『김의원묘지명(金義元墓誌銘)』
『윤언이묘지명 (尹彦頤墓誌銘)』
『광산김씨평장대보(光山金氏平章大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