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곤
등곤(藤昆, ?~1406)
조선 초 항왜 출신의 무관.
본명 : 곤시라(昆時羅)
[설명]
본래 왜구의 우두머리인 나가온(羅可溫)의 휘하에 있던 왜인이다.
1397년(태조 6) 1월, 최초에 나가온 일당이 경남 울주포(蔚州浦)에 와서 투항했으며, 이에 나가온의 아들 도시로(都時老)와 함께 계림부윤 유양(柳亮)의 볼모로 보내졌으나 유양이 병으로 나오지 않아 지울주사(知蔚州事) 이은(李殷)이 식량을 주어 후히 대접하고 이 사실을 조정에 보고하였다. 항왜들의 처후를 두고 오랫동안 의견이 분분해 결정을 못하고 있었는데 조선군이 바다와 육지를 통해 왜구를 괴멸한다는 소문을 믿고 도리어 이은을 비롯 몇몇 관료들을 납치해 대마도로 돌아갔다.
2월, 조선 정부의 노력으로 이은 등을 돌려보냈으며 태조로부터 부사정(副司正)을 제수받고 의복과 갓을 하사받았다.
1398년 2월, 태조의 명으로 이름이 등곤(藤昆)으로 개명되고, 무관직인 산원(散員)을 제수받았다.
1399년(정종 1) 11월, 왜선(倭船) 7척이 서북면의 선주(宣州)에서 항복을 청하자 왕명으로 항왜 구륙(仇陸)과 함께 이들을 회유하여 항복시켰다.
1406년(태종 6) 1월, 왜구가 침략하자 임온(林溫 : 나가온) 등과 함께 종군(從軍)하여 공을 세우기를 청한 까닭에 유의(襦衣 : 동옷)를 하사받았다.
3월, 항왜 오문(吳文) 등과 함께 전남 장흥군의 수군 55명을 이끌고 왜적을 잡아 갈도(葛島)에 이르렀다가 풍랑을 만나 익사하였다. 이에 조선정부는 쌀과 콩 10석과 종이 50권을 부의하였다.
[참고자료]
『태조실록(太祖實錄)』
『정종실록(定宗實錄)』
『태종실록(太宗實錄)』
『대동지지(大東地志)』